장재녕 작가는 국민대학교 도자공예학과에서 학, 석사 과정 졸업 후
후 일본의 도자 스튜디오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이 후 영국 러프버러(Loughborough)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박사 과정을 졸업 하였고 동시에
대학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며 작가 와 교육자의 삶을 병행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 아래 SOLUNA CRAFT에서 펼쳐지는 시원하고 청량한
장재녕 개인전
작가의 태도를 이해하며, 더욱 깊게 그 세계로 빠져들길 바란다.
1. 한국, 일본, 영국에서의 경험은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본래 공예가 가지고 있는 특성 중 하나가 지역적 특색에 기반한 재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지형 및 환경적 요인에 의해 한국-일본-영국의 재료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죠. 한국의 백토는 번조 시 수축률이 높아 휨 현상이 많이 발생하여 우연적 효과로 나타난 자연스러운 미감에 대 한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고, 도석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일본의 백토는 수축률이 적어 각이 진 섬세한 형태를 만드는데 용이 하여 완성도가 높은 섬세한 작업에 적합했습니다. 작업 과정상의 우연적 효과를 이어가며 진행된 영국에서는 벽돌 건축이 즐비한 그 지역의 붉은색, 갈색 등의 거친 흙을 접할 수 있었고 이를 사용한 컬러풀한 오브제 작품을 연구할 수 있었죠. 이러한 지역에 따른 다양한 문화적 경험의 융합은 지금까지 이어 온 저의 도자 연구의 한 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얻었던 문화적 경험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형태에 대한 연구. 일본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현지인과 생활하며 얻은 문화적 경험들을 시각화하는 작업들. 전혀 다른 서양의 환경 속, 동양에서의 문화적 경험이 적용된 영국 작업들을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적응하고 생활했던 그 경험 자체가 곧 작품으로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2년만에 국내 개인전을 선보입니다. 긴 공백의 이유가 있나요?
개인적인 이유지만, 교육 활동을 시작하며 제가 꾸준히 하고 있던 일들과 작업 공간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시를 준비한다는 것은 심적으로, 물리적으로 큰 부담이었죠. 전업 작가로서 작업하던 시간이나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고, 적응하는데 꽤 긴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를 이어나가며, 제가 지금 가진 환경과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고 싶은 작업을 마지막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한 힌트를 얻은 시간이었음은 틀림이 없습니다. 준비 기간이었던 약 1년의 시간은 앞으로의 작업과 교육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공부였다고 생각합니다.
3. 일과 공간의 환경적 변화가 작품 자체에도 영향을 주었나요?
앞에서 언급한 힌트 중 하나가 방향성입니다. 현재 도자 분야 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3D 프로그래밍과 수공예적 제작 방식을 연결시키는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이 방법이 저 의 전체 작업에서 다수는 아니겠지만,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디자인에 나의 철학을 담을 수 있을까’ 깊게 고민할 수 있었죠. 이러한 과정들이 앞으로 작업 방향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 많은 변화와 고민 속에서 준비한 전시입니다.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의도는 무엇인가요?
저는 작업의 결과보다 과정에 주목합니다. 작품이 곧 ‘나’라는 사람을 보여준다는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저의 제작 의도는 단 한번도 변한 적이 없죠. 작업의 과정이라는 것은 제작자의 태도이며, 태도라는 것은 곧 스스로 삶을 대하는 자세라고 늘 생각 합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매 순간 나타나는 제작 태도나 삶의 자세는 작업에 있어 스스로를 수신하는 도구이며,
스스로 갈고 닦는 모습들을 작품에 담는 철학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5. 과정이 태도고 태도가 곧 삶이라는 중요한 철학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태도’를 의미하는 걸까요?
단 하나의 과정도 빠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완성까지의 모든 단계에서요.
오늘 좀 피곤하고, 쉬고 싶고, 이 정도면 될 것 같은 무던한 마음들이 늘 저를 유혹하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이 과정을 놓치지 않는 거죠.
작품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랄까요. 지금 내 손에 있는 이 하나의 아이가 완성된 작품으로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의 순간을 소홀하지 않고, 매 순간 집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6. 창작자가 아닌 관객들이 이러한 과정, 즉 작업에 대한 진심 어린 태도까지 느낄 수 있을까요?
사실 거기까지 생각할 수 없습니다.(웃음) 철저히 저의 관점일 수 있지만, 이러한 과정의 노력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충분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죠. 이게 너무 미묘한 변화들이라 모두가 다 그걸 알아내고 느낄 수는 없겠지만, 제가 생각했던 어떤 작은 표현이나 목표 같은 것들을 알아준다면, 원동력이 되어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알아보는 한 명의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오기 조금 힘들지 않았을까요.
7.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대부분 푸른색이 담겨 있습니다. 푸른색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처음부터 푸른색이라고 정하고 시작하진 않았습니다. 원래 이들은 모두 백색이었죠. 미묘한 변화들에 대한 백자 중심의 연구를 지속하다 보니, 백자 안에서 색의 단계들이 조금씩, 조금씩 분류되었어요. 조선 백자에도 설백이 있고 유백이 있는데, 분원 백자가 푸른빛의 설백에 가까운가 하면 17~18 세기의 달항아리는 좀 더 우윳빛에 가까운 유백색을 보여줍니다. 백색의 영역에 대해 연구하다 보니 섬세한 변화에서 시작한 색상에 대한 연구가 확장되며 색상의 폭이 넓어진 것이죠.
8. 형태적 특징으로도 곡선들의 작은 변화가 눈에 띕니다. 곡선과 그 차이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저의 작업을 표현하는 주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상은 ‘사람’입니다. 머리도 있고 팔도 있고 다리도 있는, 전체적인 윤곽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각자의 크기와 생김새가 모두 다른 인간인거죠. 작품들을 제가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성격이나 몸의 선에 변화가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은 변화가 거의 없고 평범하기 그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심심하기까지 하지만, 자연스러움을 벗어난 심한 절곡이나 과장된 선들은 이질적으로 다가와 제 마음을 빼앗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9. 구형에 금채 장식의 신작
때로 그릇이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얘는 예쁘다, 얘는 참 곱다’ 등 의인화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굽을 영어로 ‘Feet’, 중간 부분을 ‘Body’라고 하는 것처럼, 인간이 가진 큰 틀 안 에서 제가 창작하는 기물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하며 기물을 마치 사람인 듯 의인화해서 부르고 대하는 저의 상황이 사용자들에게도 많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런 것들을 아울러 포괄적으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꾸준히 만들고 있습니다.
10. 사각의 작품과 구형(求刑), 기(器) 작품은 제작 기법이 다릅니다. 선호하는 작업 방식이 있나요?
지난 20년 동안 도자 작업을 하며, 작가로서 저만의 제작 기법을 정해놓진 않았습니다. 많은 도자 기법 중, 제가 떠올린 형상을 실제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할 뿐이죠. 그것은 코일링일 수 있고, 판 작업일 수 있고, 물레 작업일 수 있으며 캐스팅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물레 작업을 하는 사람이야.’ ‘나는 캐스팅을 하는 작가야.’ 이렇게 생각하며 작업을 해본 적 은 단 한번도 없던 것 같습니다.
11. ‘작품은 사람들이고 푸른 빛은 백색의 스팩트럼에서 시작됐으며 기법은 선택적으로 이루어진다.'
라는 작가님의 작품성, 즉 본인만의 독창성을 위해서 노력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보통 도자의 제작 과정은 흙을 성형하고,정형 후 건조시켜 초벌을 한 다음, 시문을 하고 유약작업 후 가마를 떼는 암묵적 규칙을 따릅니다. 저의 경우, 과정과 과정사이에 변형의 과정들을 추가합니다. 이 과정에서 즉흥적으로 나올 수 있는 저만의 미묘한 곡선들을 표현하는 것이죠. 성형과 정형과 성 형, 성형과 건조와 정형 사이에 스스로 만들어낸 작업 과정에서 특별한 형태를 만드는 것이 저만의 미감이라 생각합니다.
과정의 추가는 시간적, 물리적 노력이 필요한데, 귀찮을 수 있는 이 과정을 무시하지 않고 빠뜨리지 않으려는 태도가 곧 저의 독창성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12. 마지막으로, 작업적 측면에서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해오며, 지극히 수공예적 제작 기법을 사용하고 공예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연구만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업에 쓸 수 있는 시간이나 공간적 환경이 변화하며 20년 간 꾸준히 해오던 것들을 바꾸어야만 작업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죠. 그 방안으로 3D 프로그램을 접목시킨 작업을 시도하였는데, 일련의 과정들이 꽤 흥미로워 지속적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방식을 사용하다 저의 작업에 적합하지 않는다 판단되면 과감히 사용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측면에서 지금 공예를 배우는 학생들한테 가르쳐 주고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기술임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당분간은 지속할 예정입니다. 매 순간 해야 할 작업과의 약속을 지키는 태도로요. (웃음)
OUTRO
솔루나 크래프트가 기획한 장재녕 개인전
뜨거운 태양 아래 경쾌한 선율이 되어줄